- 아래 장애인이동권 투쟁 일지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kr)에 보도된 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2002년 7월 1일 광화문 천막투쟁

'축제의거리'도 외면한 장애인이동권
[현장] 장애인 광화문역 천막농성 무산
 

월드컵 한국전이 열릴 때마다 거리를 빼곡하게 메운 붉은 인파들 때문에 한 발 내디딜 틈도 없었던 광화문 네거리.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지금도 장애인들이 마음놓고 움직일 수 있는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월드컵 4강 진출을 기념하기 위한 임시공휴일로 정해진 7월 1일 오전. 붉은 인파가 빠져나간 광화문 거리로 휠체어에 탄 장애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지난 5월 19일 발산역에서 발생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에 대한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천막을 펴보기도 전에 그들 하나하나는 휠체어째 들려 경찰에 연행되고 말았다.  

   "지하철 타려면 목숨부터 내놔라?"

 "기자회견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장애인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데 모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장애인 타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정보다 50여 분 늦게 시작한 기자회견. 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휠체어 장애인 20여 명을 비롯한 이날 참석 예정자 40여 명이 모두 모인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7월 1일 11시 50분경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매표소 앞.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동권연대)는 천막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동권연대 박영미 공동대표는 "장애인은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리프트를 타야 한다"며 현재 지하철 장애인용 리프트의 위험성을 경고한 뒤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서둘러줄 것을 호소했다.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양현희 팀장 역시 "지난해 1월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사고 이후 계속 투쟁해왔지만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면서 "장애인이 진정 바라는 건 편하고 안전하게,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공동대표는 "이번 발산역 참사에 대해 서울시나 도시철도공사측은 도의적으로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 책임이 없다며 사과를 회피하고 있다"면서 "서울시가 신문지상을 통해 공개사과할 때까지 이곳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전원 연행, 천막농성 무산

12시 30분경 기자회견을 마친 장애인들은 경찰의 강제 연행을 막기 위해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어 연결시킨 뒤 천막 설치를 시도했다. 이때 주변에 있던 30여 명의 공익근무요원들이 달려들어 천막 설치를 막았으나 이동권연대 회원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밀려나고 말았다.  

  한 역무원은 "지하철역사 내에서는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면서 "이미 역사에 들어온 장애인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천막을 설치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공익근무요원들이 물러나자 역사 곳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기동대 수백 명이 방패로 앞세워 밀고 들어왔고 끝내 천막 구조물들을 모두 압수해 갔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박경석 교장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휠체어 밖으로 나동그라지는가 하면 장애인 도우미 한 명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코뼈를 다쳐 병원에 가기도 했다.  
  12시 50분경 시위대 주변을 겹겹이 에워싼 경찰은 "광화문역장이 퇴거 요청을 해왔다"며 자진해산을 요구했다. 이어 장애인들의 저지를 뚫고 들이닥친 경찰들은 남자 도우미들을 강제로 격리시킨 뒤 통행을 차단하고 대치에 들어갔다.  

  이에 박경석 공동대표는 "천막은 없지만 예정대로 공개 사과가 있을 때까지 최후의 한 사람까지 남아 농성을 벌이겠다"며 맞섰고 역사 여기저기에 나뉘어 격리된 농성단들은 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폭력행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2시간 남짓 대치상태에 들어간 경찰은 오후 2시45분경 '최후통첩'에 이어 박경석 공동대표를 시작으로 장애인들을 휠체어째 들어 연행해 가기 시작했다.  

 장애인들과 도우미들이 필사적으로 맞섰지만 10여 분뒤 지하철 3번 출구 교보빌딩 앞으로 실려나간 장애인들은 끝내 이날 천막농성 시도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 부르는 지하철 리프트
 

 지난 5월 19일 오후 7시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남·63세)씨가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 20일 오전 2시경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전에도 지하철 리프트는 잦은 고장과 허술한 안전장치로 인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해 왔다. 지난해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해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동권연대는 이번 발산역 사고에 대해 서울시, 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 서울시도시철도공사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못한 데 따른 잘못을 인정하고 ▲신문지상을 통한 공개 사과 ▲유가족 피해보상 ▲지하철 장애인 사고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과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2/07/01 오후 6:52
ⓒ 2002 OhmyNews

 

 

 ▶ 2002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는 장애인들
우리는 정부의 1회성 장애인의 날 행사를 반대한다!

 지난 토요일 우연히 종로 3가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생각지도 않았던 모습이 그분들에게는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된 듯 합니다.
 무심코 오르내리는 버스출입구의 높은 턱이 그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질 것이고, 분주하게 오르내리던 지하철 계단 역시, 그들에게는 그들의 갈 길을 가로막는 또다른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약 그들과 같다면 나는 어떻게 학교를 갈 것이며, 직장을 갈 것이며, 외출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아니,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외출을 할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많은 장애인들이 생계조차 꾸리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주위를 둘러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만의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은 우리 주위를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조금만 더 그들의 눈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2/04/23 오후 9:52
 ⓒ 2002 OhmyNew

 

  

 ▶ <만화사랑방>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DJ 교통버스, 장애인들은 뒷전

 

 

 ▶ 2002.1.22. 오이도역1주기, "장애인도버스를 탑시다" 행사

이순신 동상 위, 장애인들의 절규, 부산 이어
서울 세종로에서도 이동권 요구 시위

 두 명의 대학생이 장군 다리 밑에서 절규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준비한 전단지가 세종로 한 가운데에 흩뿌려졌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동상 아래로 나부끼자 그 밑으로 취재기자와 경찰이 삽시간에 모여들었고 마침내 소방차의 사다리가 놓여졌다.   
 그렇게 소방관과 대치하길 30분. 끌려 내려오면서도 그들은 구호를 멈추지 않다. 평화롭던 22일 오후 4시 30분. 집회 신고가 되지 않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은 경찰과 장애인, 학생들이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길 가던 시민들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고 몇몇 여중생들은 험악한 광경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오후 1시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작된 집회는 해가 저물고 눈마저 내리기 시작한 저녁 6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혜화동에서부터 장애인들은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광화문까지 가는 8-1번 버스는 길을 봉쇄한 경찰들 뒤에서 '비장애인'들만 태운 채 유유히 출발했다. 집회에 모인 장애인들은 경찰에 가로막혀 자신들의 생존권과 다름없는 이동권 보장만을 외쳐야 했다.  
 그리고 다시 모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장애인들의 휠체어는 버스에 오르지도 못하고 또 다시 경찰들에 에워싸여야 했다. 그들의 분노가 드디어 세종로 이순신 동상 위에서, 세종로 사거리 한가운데서 폭발하고야 말았다.  
 세종로 사거리에 모여든 20여명의 장애인들은 굵은 쇠사슬로 서로의 목과 휠체어를 이어서 묶었다. 다시 취재진의 카메라 불빛과 경찰의 방패에 에워싸인 그들은 울부짖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장군 동상 뒤로 광화문까지 불을 밝힌 수많은 차들은 마치 장군의 명령만을 기다리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가면 건설교통부에 가라, 건설교통부 가면 보건복지부로 가보라고 하고 총리실 가면 주무부처에 가서 알아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질의서를 보냈는데도 정부는 한번도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우리의 생존권은 어디에서 보장받아야 합니까? 바로 여기에 책임 있는 정부관계자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종로에 울려퍼진 장애인들의 절규


  5시간의 힘겨운 이동과 시위로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의 말총머리는 이마 아래로 많이 흘러내려와 있었다. 함께 있던 장애인 학생들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쇠사슬을 두르고 30분간 서울의 한 복판을 점거한 장애인들의 휠체어는 절단기가 동원되고 경찰의 강제연행이 이루어진 뒤에야 하나 둘 인도로 옮겨질 수 있었다.
 퇴근길, 눈마저 내리는 세종로 사거리에서 그들이 그렇게 울부짖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장애인으로써 살아온 삶. 그 고난과 억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


라고 오늘 하루 장애인들이 겪어야 했던 기본적인 이동권 박탈만으로도 그  이유로서 충분해 보였다.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1주년, 벌써 10번째로 열리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버스타기 운동. 이전과는 달리 오늘 집회는 참가한 사람들의 수와 현장 분위기에서도 그 무게를 달리 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철거민, 각 대학과 장애인 단체들이 들고 온 깃발들이 어우러져 마치 민중대회를 연상케 했다. 집회장 한 가운데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사극에서나 보는 칼을 목에 차고 있었고 혜화동 로터리 도로변에는 10여 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었다.

 목에 걸린 칼은 이동권, 나아가 생존권을 박탈당한 장애인의 삶을, 하얀 조화에 붙은 '근조 버스'는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일반버스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대열에서 한 발치 벗어나 집회 현장을 지켜보던 장애인실업자연대 이안중(38) 씨는 "정부는 기만적인 예산타령만 하면서 400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않고 있다"며 "직업도 없고 집밖으로 나오기도 힘든 재가(在家)장애인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집회장 주변에는 개별적으로 알음알음 찾아온 장애인들이 자신의 문제와 직결된 집회를 주의 깊게 지켜보기도 했다. 집에서 동료와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는 한 장애인은 "지금 많은 비장애인들은 우리가 마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줄 안다"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LPG값 보전해주고 타기도 힘든 기차요금 할인해 주는 거나 지하철 무료패스 주는 걸로는 실제 아무런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없다"며 "현재 생활보호대상자이거나 1, 2급 중증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장애수당 5만원을 모든 장애인들에게 확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리를 함께 하며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의 휠체어를 밀어주던 사회당 원용수 대표도 한 마디 지적하고 나섰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이렇게 힘겹게 사는 장애인들의 삶을 못 느끼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들의 요구에 답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우리 당 차원에서라도 헌법소원을 내고 인권위에도 제소를 할 것입니다."
"리프트 추락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타살"


  이날 집회에서는 종이로 만든 일반버스의 화형식이 열려 저상버스에 대한 장애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한 장애인은 "정부가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나라 도로 사정상 속도를 낼 수 없어 경제적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며 "일본의 복지택시라든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저상버스에 대한 정부지원 등을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화를 싣고 광화문으로 이동하려던 장애인과 학생들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버스를 탈 수 조차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화는 집회장에서 폭력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지고 갈 수 없다"며 장애인들의 버스 승차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경찰간의 실랑이가 1시간 넘게 벌어졌고 7명의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버스 타기에 실패한 장애인들은 개별적으로 다른 정류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들이 광화문으로 떠나기 전 박경석 대표의 마지막 발언이 화형식으로 타다만 재와 함께 대학로 거리에 긴 여운을 남겼다.

 "장애인들에 대한 이동권 조차 보장하지 않고 지하철 리프트에서 한 장애인을 떨어져 죽게 한 것은 분명 이 사회가 가한 타살입니다."

 

 

 

▶ 2001년 12월 19일 제 9차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

장애인이동권연대 종로3가 점거 저상버스 도입
요구하며 30여분간 기습시위

 19일 오후 6시10분경 장애인이동권연대(공동대표 박경석) 소속 장애인과 학생 30여명이 서울 종로3가 교차로를 기습 점거했다.  사다리와 몸을 쇠사슬로 고정시킨 박경석 공동대표 등 휠체어 장애인 8명은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며 30여분간 시위를 벌이다 긴급 출동한 경찰에 의해 6시40분경 강제 해산됐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출발, 일반버스로 세종문화회관까지 이동하는 '제9차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를 벌인 뒤 자진 해산했으나 종로3가에 재집결, 이 같은 기습 점거 시위를 벌였다.   

올해 1월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참사를 계기로 본격화된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은 지금까지 모두 9차례의 장애인 버스타기 행사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알려왔다.

 

 

 

 

 

  

 ▶ 2001년 11월 21일 '저상버스 시승행사'장

장애인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저상버스 시승행사' 현장

  11월 21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장애인이동권연대'가 마련한 저상버스 시승행사가 열렸다. 오후 1시부터 약 4시간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는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라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 캠페인으로서 벌써 여덟번째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시승함으로써 이동권 보장의 대안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저상버스는 승차공간이 낮게 설계된 버스로서 보도와의 이음장치를 통해 휠체어 장애인과 노약자 등이 쉽게 승하차 할 수 있는 버스이며, 유럽 등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 등을 위해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사용으로 일부가 있을 뿐이며, 이날 제공된 저상버스는 대우차에서 견학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지체장애인 및 일반시민, 장애인 이동권연대 단체 및 각계 사회단체 대표자 등 약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초청인사로 참가한 송월주 우리민족서로돕기 대표는 장애인이동권은 비장애인과 차별없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장애인 이동권연대를 이끌고 있는 박경석 공동대표는 정부의 미온적이고 시혜적인 차원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고 실질적인 이동권 대책을 요구했다. 박경석 대표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서울시가 추진중인 몇대의 장애인전용 셔틀버스가 아니다. 모든 장애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라며 장애인 이동권이 당연한 권리임을 주장했다. 청각장애인인 주신기 장애인단체회장은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동권 쟁취를 위해 싸워나가자고 제안했다.
 민주노총 허영구 위원장대행은 장애인이동권 문제는 장애인들의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직결되어 있다고 보고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연대 의지를 밝혔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을 서울시에 요구중이며, 당 차원에서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승행사에는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 원용수 사회당대표,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 손봉호 교수 등도 참여하였다.
 오후 2시, 드디어 우리나라 장애인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들이 준비한 저상버스에 시승하였다. 약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휠체어 장애인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장애인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초청인사들도 함께 저상버스에 올라탔다. 이 버스는 세종로에서 남대문까지 수차례 순환했다. 몇몇 관심있는 사람들이 함께 타기도 했으며, 주변의 시민들도 저상버스를 타는 광경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한편 박경석 대표 등 일부 장애인들은 별도로 팀을 이루어 도움을 받아 일반버스에 올라탔다. 도우미가 있었음에도 정말로 아슬아슬했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가 더욱 집중된 순간이었다. 휠체어 장애인들 혼자의 힘으로는 일반버스를 탈 수는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 다시 확인되는 순간 당연히 보장받았어야 함에도 묵살되어 온 장애인들의 권리와 그 고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저녁 5시가 넘어서 끝났다. 장애인이동권연대에 참가하고 있는 여러 단체의 비장애인들도 끝까지 남아서 장애인 이동권 요구의 정당함을 알렸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연대단체에서 '장애인 전용버스 계획을 철회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라.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시민들에게 그 정당성을 홍보했다. 여러 사회정치단체가 참여하였지만, 정부측이나 기존 여야정당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만이 초청인사로 왔을 뿐이었다.
 다만 그동안 일곱차례의 버스타기 행사를 강제로 차단하고 연행과 구속으로 일관하던 경찰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날 1개 중대의 전투경찰이 세종로 지하도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이동권연대 참가단체가 25개에 이르고 1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오늘 시승행사를 통하여 장애인 스스로가 이동권의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도 예산부족을 들어 저상버스 도입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사람의 기본권이 예산 때문에 보장받을 수 없다면 이 나라의 국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 도대체 무엇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장애인 차별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에서 복지의 부재는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거론되지 않은 장구한 기본권의 문제요, 계급모순의 핵심이기도 하다.
 장애인이동권 쟁취투쟁은 지난 1월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리프트 추락에 의한 장애인 사망사고 이후 장애인이동권 연대가 결속됨으로써 본격화되었고, 전체 장애인운동의 핵심적인 투쟁으로 일어섰다. 이는 지금까지 수혜적인 요구 차원의 장애인운동이 진보적인 민중운동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장애인운동이 민중운동의 절박하고 중요한 부문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이며, 더이상 진보진영의 관심 밖에 머무를 수 없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 2001년 9월 27일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

경찰이 버스 점거하고 장애인 억류
이동권연대 30여명 4시간여 버스에서 못내려

 

 집회 때마다 경찰의 극심한 제지를 받아왔던 장애인이동권연대(공동대표 박경석 등)가 오늘(27일) 아예 집회금지 통고를 받은 가운데 오후 12시 30분 서울 삼성플라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버스 3대에 장애인과 도우미들이 나누어 타고 광화문으로 이동, 하차하려고 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이를 막아섰던 것.
 그리고 일부 경찰은 버스 내부로 진입해 버스를 점거했다. 오후 2시부터 6시30분까지 4시간이 넘도록 버스에 억류되어 있던 장애인등 장애인이동권연대회의 관계자들은 모두 30여명.  
 대치가 진행중인 가운데 버스안에 타고있던 장애여성 한 명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이 이를 계속 묵살했고, 주변에 지나가던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요구한지 한시간만에 겨우 창문으로 나오게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를 두고 경찰은 지난 8월 29일에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버스를 점거했었다며 또다시 불법을 자행할 위험이 있으므로 억류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1/09/27 오후 6:52
ⓒ 2001 OhmyNew

 

 

 ▶ 2001년 8월 29일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

장애인 점거 버스 4시간 동승기
비오는 날의 절규 "우리도 버스 타고 싶다"

<종합> 29일 오후 10시

"죄송합니다만 버스에서 내려주세요"  29일 오후 동아운수 소속 8-1번 일반버스는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작은 해방구'였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앞 최장시간 정차기록을 세웠을 법한 이 버스 안에서 이들의 투쟁을 계속 지켜본 오마이뉴스 기자 역시 또 다른 '공범'이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장애인과 함께 버스 타기' 출발 장소인 서울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기자가 도착한 건 오후 12시30분경. 현장에는 휠체어에 앉은 20여명의 장애인과 '도우미'를 맡은 40여명의 비장애인 학생들이 집결해 있었다.

 

 장애인 버스 점거 "움직이지 마" / 허성호 기자


 지난 24일 서울역에서 같은 행사를 시도했다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출발전까지 다들 긴장된 표정이었다.  
 12시40분경 8-1번 버스가 도착하자 학생들의 부축을 받아 장애인 5명이 차례차례 버스에 올랐다. 현장엔 50여명의 전경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들의 버스승차를 가로막지 않았다.  
 이렇게 버스 3대를 보내고 이동권연대 박경석(41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 지체장애인) 대표를 포함한 마지막 그룹이 버스에 오른 시간은 오후 1시7분경. 기자 역시 마지막 버스에 올라 목적지인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1시20분경 버스가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했다. 일반 승객들이 버스 안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을 즈음 동승한 학생들은 승객들에게 하차를 요청했다.   

 "죄송합니다. 버스비는 드릴 테니 내려주시겠어요."

  장애인 하차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운전석을 벗어났던 버스기사 안영주(30, 동아운수) 씨 역시 얼떨결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버스를 내렸다. 곧 버스 문은 굳게 닫혔고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은 버스 창문을 통해 굵은 쇠사슬을 던졌다.

 상황은 갑자기 급박해졌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100여명의 전경들은 서둘러 버스와 정류장 주변을 둘러쌌다. 이에 맞서 30여명의 학생들과 이동권연대 소속 10여명의 장애인들은 휠체어에 쇠사슬을 연결한 채 버스 둘레를 바짝 에워싼 채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버스 안에 남아있던 사람은 박경석 교장과 야간학교 학생인 송병준(23) 군 등 2명의 휠체어 장애인과 10여명의 학생,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고 있던 5명의 기자들뿐이었다.

 운전석에 휠체어와 몸을 쇠사슬로 묶고 손목에 수갑까지 채운 박경석 교장은 "이미 수차례 우리도 버스를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도 아무런 대책도 없고 무관심한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나왔다"면서 국무총리나 책임 있는 당국자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경찰 관계자가 접근해 "버스를 무단 탈취해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불법행위"라며 버스에서 즉시 내릴 것을 요구했지만 박 교장과 학생들은 요지부동이었다.

2시가 넘어서자 인도에 정렬에 있던 50여명의 사복 전경들과 여자경찰들은 인간사슬을 만들고 있던 학생들에게 달려들어 하나둘 연행해 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과 학생, 취재진들간의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인간사슬을 만들던 학생들을 모두 연행한 경찰들은 이번엔 절단기를 동원해 쇠사슬을 끊고 장애인들을 끌고 갔다.

 버스 주변이 완전히 무방비가 상태가 된 3시20분경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서 첨예한 대치 상황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경찰과 박 교장간의 협상이 오가는 가운데 4시40분경에는 버스회사 대표가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동아운수 임정욱 대표이사는 "장애인 버스 이용문제는 정부나 모든 버스회사를 상대로 풀어야할 일인데 개인업체의 사유재산을 갖고 시위를 벌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다.  

 5시7분경 비가 그치자 경찰들은 자동 개폐기를 통해 버스 뒷문을 열고 버스 안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박 교장과 학생들은 저항 없이 경찰들의 부축을 받아 버스를 내려왔다.  

 20여명의 장애인을 포함한 60여명의 버스농성 참가자들은 경찰버스에 실려 종로경찰서 등 인근 경찰서로 연행됐다.  

  

3신: 29일 5시50분  경찰 버스 안 진입 농성자들 연행

 경찰은 오후 5시10분경 버스회사 직원을 불러 버스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농성중인 장애인 등을 모두 연행했다. 이로써1시20분에 시작된 장애인들의 시내버스 점거농성은 4시간 여만에 사실상 끝났다.

 

2신 대체: 29일 4시25분

경찰 장애인들 연행

 

오후 4시 20분 현재 세종문화회관 앞 시내버스 점거농성 현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농성중인 장애인들을 연행하고 있다.  
 경찰은 3시 20분경 1차로 장애인들이 휠체어와 버스를 연결해놓은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고 버스 외곽에서 농성중이던 장애인들을 연행했으며 장애인들은 이에 맞서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는 구호를 외쳤다.  
 장애인들의 시위에 동조하는 대학생 2명은 버스 위로 올라가 구호를 외쳤으나 경찰은 소방차를 동원 이들도 연행했다.  
 그러나 4시 25분 현재 버스 안에는 장애인 2명과 비장애인 10명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고 경찰은 이들을 연행하려는 작전을 세우고 있어 충돌이 예상된다.

 

 경찰은
   "불법점거이지만 버스 문을 열고 해산하면 연행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하지 않겠다"고 설득했지만 농성자들은 "우리는 경찰의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국무총 리를 면담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계속 농성을 하고 있다.



  
1신: 29일 13시51분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 휠체어 농성


 장애인 이동권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8월29일 오후 1시30분 현재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내버스 1대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장애인 20여명은 8-1번 시내버스 안과 밖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확보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버스 창문에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는 구호를 종이에 써 놓고 있다. 버스 출입구에는 15명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휠체어를 묶은 채 150여명의 전경과 대치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연대는 29일 오후 1시 대학로에서 '장애인과 함께 버스타기 행사'를 가진 뒤 8-1번 시내버스 등 4대에 나눠 타고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1시20분경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승객과 운전사를 내리게 한 뒤 버스 1대를 점거했다. 이들의 농성 현장에는 전국 에바다대학생 연대회의, 학생행동연대 소속 대학생 40여명도 나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편 장애인이동권연대는 7월23일부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과 함께 천막농성을 벌이기도했다. 이들은 그간 모든 지하철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장애인이 대중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책 마련,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 개정 등을 요구해왔다.
 

 2001/08/29 오후 1:51
ⓒ 2001 OhmyNews

 

 

 

▶ 장애인편의시설 미비 '이동권 침해' 집단 소송건.

 "장애인 이동권 침해를 배상하라"
장애인 편의시설 미비 '이동권 침해' 손배소송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아래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장애인이 침해받고 있는 이동권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나섰다.   22일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만훈(지체장애 1급)씨 등 9명을 청구인으로 해 지하철역사의 편의시설 미비로 인한 장애인 이동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사이버 법률회사 디지털로(Digitallaw)와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소송은 서울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 철도청과 서울시를 피고로 삼아 이동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4500만원을 청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서울지방법원으로 이동해 소장을 접수시켰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이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인격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권리와 동의어"라며 "정부나 대중교통 운영자들은 예산타령을 하면서 장애인 이동권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는 헌법상 기본권을 충족시키는 정부의 책무이지 결코 도의상 책임에 그칠 수 없다"며 "이번 소송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이 박탈돼 있는 현실이 변화하는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청구인 가운데 한 명인 조미경 씨는 소장에서 "대학수능을 앞두고 오목교에 있는 입시학원을 다니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해야하는데 양평역(5호선)에 리프트가 없어,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30∼40분을 가야한다"며 고통을 호소하며 소송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소송은 변호사 130여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로펌 디지털로'(Digitallaw)와 'imbc 문화방송'이 공동으로 월 1건 이상의 무료공익소송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후, 처음으로 선정된 무료 변론 지원소송이다.  

 이번 소송 대리인은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대표변호사 등 6명의 변호사들이 맡았으며, 소송 비용은 디지털로에서 일체를 지원한다.

 소송에 대해 디지털로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지난 7월 9일부터 디지털로와 imbc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총 38건의 무료공익소송 신청자들 중에서 이동권연대의 소송이 공익소송에 적합하다고 판단, 선정되었다"며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가고싶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힘있게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 7월 30일부터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서울역 앞에서 천막농성과 백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1/08/23 오전 07:05
기사제공 기관 : 인권운동사랑방 ⓒ 2001 OhmyNews

 

 

▶ 2001년 7월 23일 서울시청 앞 천막농성과 26일 무더기 연행

집시법에 막힌 '장애인이동권'
경찰, 이동권요구 노숙농성 '집시법 위반' 해산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요구가 집시법에 가리워져 묻혀지고 있다. 지난 23일에 이어 26일에도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해 1호선 시청역 1번출구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던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농성단을 거듭 해산했기 때문이다.  
 남대문경찰서는 26일 오후 3시경, 서울 시청역 1번 출구 앞에서 농성 중이던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공동대표 박경석 등) 소속 활동가 40여명을 경찰 3백여 명을 동원해 연행하고 농성물품을 모두 압수했다.  

 연행된 박경석 공동대표,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소속 학생들은 집시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행자 가운덴 장애인이 8명이며, 이 중엔 시각장애인도 1명 포함돼있다.

 경찰은 노량진·동대문·성북경찰서 등으로 분산 유치했다가 27일 새벽 1시 15분 현재 동대문경찰서에서 노들야학 교사 등 10명, 성북경찰서에서 9명, 남대문경찰서에서 박경석 공동대표 등 10명이 풀려났다. 성북경찰서에서도 곧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장애인편의증진법' 개정·강화 △정부·장애인단체 간 협의체 '장애인이동권정책위원회'(가칭) 설치를 요구하며 줄곧 농성을 해왔지만 경찰이 천막을 못 치게 해 지금껏 노숙을 해왔다. 이에 장애인이동권연대는 비와 이슬을 맞아가면서 바닥에 깐 돗자리 하나에만 의지하며 농성과 대시민 홍보활동·서명운동을 전개해왔다.

 농성 첫날인 23일엔 경찰이 천막 설치를 막는 도중에 천막이 부서지고, 이를 막으려던 에바다대학생연대 소속 배원영(건양대학교 2년) 씨가 정신을 잃고 인근 강북성심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경찰은 "일몰이후의 집회는 금지돼 있다"며 경찰력을 동원해 농성을 진압, 26일까지 천막 3개를 파손시켰다.  

장애인 목소리에 귀 기울였나?

 26일 연행현장을 목격한 노들장애인야학 김기룡 교사는 "이동권 연대는 단지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확보해 장애인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달에 고작 다섯 번 정도 외출, 사실상 감옥에서 사는 장애인의 목소리에 이 사회에서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현행 집시법을 위반하며 노숙농성을 하게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 교사는 또 "신체적 장애로 인해 사회적 장애까지 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동권'을 확보하는 것은장애인이 제대로 서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라며, "이런 절박한 요구에 방패와 군화발로 짓밟고 연행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 6월 16일부터 지하철의 모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장애인이 대중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2001/07/27 오전 05:41
기사제공 기관 : 인권운동사랑방 ⓒ 2001 OhmyNews

 

 

 

▶ 2001년 7월 26일 서울시청 앞 농성장 강제 연행 현장

이동권 요구 농성장애인들, 강제 연행
26일 오후 6시 모두 연행, 현재 4개 경찰서에서 조사 중


 

 지난 7월 23일부터 터져 나온 장애인들의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요구가 서울 4대문 안의 천막 농성 선례를 남가지 않으려는 경찰의 무리한 강제 진압과 연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26일 오후 6시경에는 다시 천막 농성과 노숙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경찰이 급습하여 장애 여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연행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40여명의 농성자가 동대문, 남대문, 청량리, 성북 경찰서로 분산 수용되고 있으며 연행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애인 8명 : 박경석 공동대표, 노들야학 학생 2명(송병준, 이규식),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소속 1명, 뇌성마비연구회 '바롬'소속 1명, 동국대 장애인권위원회 소속 1명, 건국대 가날지기 소속 1명(유기용), 조선대 학생 1명 그 외 대부분 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및 동국대 소속 학생들 20여명이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회의는 23일 오후 4시경,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강제 장치 마련을 요구하며 시청 건너편에서 휠체어와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천막을 설치했다.  
 이에 경찰은 서울 시청 앞 텐트 농성을 시도하려는 장애인들과 대학생들을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집중 구타해, 여학생 한 명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경찰은 이후에도 25일과 23일 천막농성장에 대한 강제 연행을 시도하였으나, 가로수와 천막 등에 자신을 솨사슬로 묶고 버티는 장애인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25일에는 파손한 천막비용과 부상자 치료비 보상을 조건으로 농성 장소를 서울역으로 옮기기로 합의하였으나, 경찰이 일방적으로 협상을 파기함으로써 장애인들은 다시 시청 앞에서 노숙을 지속했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회의는 올해 2월에 있은 오이도역 장애인수직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결성되어 서울역 점거 농성, 정부청사앞 휠체어 1인 시위를 벌여 오다 지난 4월 20일 출범했다.  
 이번 천막 농성은 오이도역 추락 참사 이후 수사 발표 및 관계당국의 책임자 처벌 등 그 동안 장애인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것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자 단행된 것이다.  
 경찰의 이날 연행은 23일 첫날의 강제 진압에 대해 집회 신고를 낸 합법집회를 무리하게 해산을 시도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집회 허가가 끝나는 일몰 이후에 진행되었다.  
 경찰의 강제 연행 이후에도 현장에 남아 있던 장애인들과 대학생들은 남대문 경찰서에 모여 이번 연행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다.

2001/07/26 오후 9:10
기사제공 기관 : 박지주 소송 지원연대 ⓒ 2001 OhmyNews

 

 

  

▶ 2001년 7월 23일 서울시청 앞 천막농성 현장

장애인 이동권 요구 농성대학생 2명 의식 불명

 

오늘(23일) 오후 4시경,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실효성있는 강제 장치 마련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건너편에서 휠체어와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천막을 치려는 도중 학생 2명이 경찰에 의해 구타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학생은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소속 배원영 씨로 경찰에게 끌려가는 후배 남학생을 보호하려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집중 구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현재 강북성심병원 응급실에 있으며 한시간 가량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조금전 의식을 회복했으나 오른쪽 어깨와 가슴 등을 경찰에게 발길질 당해 부상정도가 심하다.
 이 과정에서 이 여학생을 보호하려던 전국에바다 대학생연대회의 집행부 오현중(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1학년)군도 의식 불명 상태로 같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부상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권연대는 오늘 1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 갖고, 휠체어 장애인 20여 명과 함께 시청 앞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 곧바로 무기한 천막농성을 하려는 과정에서 경찰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지금은 남학생 15명 가량이 연행되었고 남아있는 장애인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집회를 진행 중에 있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회의는 올해 2월에 있은 오이도역 장애인수직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결성되어 서울역 점거 농성, 정부청사앞 휠체어 1인 시위를 벌여 오다 지난 4월 20일 출범했다.  
 이번 천막 농성은 오이도역 추락 참사 이후 수사 발표 및 관계당국의 책임자 처벌등 그동안 장애인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오던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단행되었다.

2001/07/23 오후 5:54
기사제공 기관 : 박지주 소송 지원연대 ⓒ 2001 OhmyNews

 

 

 ▶ 2001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

<장애인의 날> 있었던 상반된 두 모습
"장애인에게 시혜와 동정은 수치다"

 

20일, 서울 올림픽 역도 경기장에서 기념식이 열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른 집회가 열렸다. 400여 명의 '비장애인'들이 눈을 가린 채 흰 지팡이를 들고 '장애인'이 되어 롯데월드에서 잠실역 주변의 19개 코스를 돌아다니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100여 명의 장애인들이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종묘공원에서 탑골공원까지 거리 행진을 벌였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극복상위원회는 각 분야에서 장애를 극복하여 사회에 모범이 되는 장애인들에게 '올해의 장애극복상'과 함께 500만원을 수여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애인들이 종로3가 지하철역 장애인 승강기를 부수려다 공익근무원에게 휠체어 채 들려서 지하철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제21회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상반된 모습들이다.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학생들이 이날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유인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인간승리... 동정... 해마다 이날이 되면 대중매체들은 하나같이 특집을 내보낸다. 그것은 대부분 아름다운 미담들이다.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공을 거둔 '인간 승리자'를 칭찬하거나, 어렵게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찾아내어 '우리 이웃'이라며 동정심을 유발한다. 정부에서는 매년 장애인의 날마다 자신네들의 거창한 인류애를 발휘하는 듯한 자화자찬식의 기념사를 하고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화려한 기념행사를 하는 것으로 생색을 내왔다... 그래서 장애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일까?..."  

 서울DPI(서울장애인연맹) 등이 주관하고 뇌성마비연구회 '바롬' 등이 주최한 '제5회 장애인고용촉진범국민걷기대회'가200여 명의 장애인과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후 1시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렸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국가의 무조건적인 보호나 국민의 시혜와 온정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00년도 전국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유형이나 장애정도에 상관없이 15세 이상 전체 장애인의 31%만이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반 실업률이 4.2%인 데 비해 장애인의 실업률은 28.4%로 무려 7배나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또 ▲국가와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 2%를 준수하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의 장애인 의무고용을 강화하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장애인 실업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대회가 끝나고 도로 2차선을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며 탑골공원까지 행진을 했다.


"장애인 비고용 대표기업은 '삼성'"


 이날 행사에 참가한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박경석(40) 교장은 "장애인의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며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할 정부와 기업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분노했다. 그래서 그는 TV만 보면 화가 난다.   


"
예를 들어 삼성은 광고할 때 '장애인이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지난해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발표한 30대 기업 장애인 취업현황을 보면 장애인을 가장 고용하지 않는 기업으로 '삼성'이 뽑혔다. 삼성은 장애인 문제를 복지기금 조금 내면 된다는 식의 시혜와 동정의 문제로 미화시키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는 장애인의 노동의 권리를 짓밟아 버리는 이중적인 모습이다. 결국 자본의 모순이며 약자를 짓밟는 경쟁, 효율, 돈이 우선시되는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박교장은 장애인의 교육권, 이동권, 노동권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회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450만 장애인 중 1년 동안 5일밖에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70.5%에 이를 정도로 장애인들은 현재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자연스레 교육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고, 교육을 못 받으면 취업이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당국이 줄기차게 외치는 "장애인이여 사회 속으로..."라는 구호는 장애인들을 더욱 위축시킬 뿐이다.
 박동렬(23. 강남대) 씨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종로3가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그러나 장애인용 승강기를 탈 수가 없었다. 얼마전 오이도 역에서 한 장애인이 수직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목숨을 걸고 타야 하는 장애인용 승강기를 부수려다 공익근무요원에 의해 휠체어 채 지하철 밖으로 들려나왔다.

"장애인 리프트는 20분에서 40분 정도가 소요되고 위험하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실제 리프트를 이용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전하고 이동하는데 2∼3분밖에 소요되지 않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을 들어 미루고 있다. 장애인도 시간이 금이다. 효율성 없이 보여주기식 사업은 이제 안 된다."
 
 
박씨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함께 집회에 참석한 권영주(25. 한양대) 씨는 학교에 있는 '장애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씨는 "장애인 봉사동아리 같은 곳에서는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며 "장애인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지만 이동권 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밝혔다.  

뇌성마비인 피노키오 자립생활센터 정만훈(34) 소장은 "우리에게 재활 의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며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역시 뇌성마비인 안형진(23. 한양대) 씨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장애인단체가 정부와 상당히 타협하고 있다"며 "김대중 대통령은 스스로 장애인이면서 정권을 잡았음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행진 내내 방송차량 위에서 구호를 외쳤던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김도현(28) 간사는 "이번 행사는 기존 장애인단체뿐 아니라 학생운동, 민중운동이 결합되었다"며 "단편적으로 끝나던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그 동안 억눌려왔던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투쟁적인 발언으로 마음놓고 할 수 있었다는 것에 행사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01/04/21 오전 11:59
  
ⓒ 2001 OhmyNews

 

 

 

▶ 만평

<만화> 장애인을 버리고 가는 김대중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4월 20일은 21번째 맞는 장애인의 날. 우리나라 장애인은 장애인의 날에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싸움에 나선다.
  '오이도역' 추락참사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오이도 대책위)는 지난 2월 26일부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37일간 진행해왔던 1인 시위를 19일에 마침과 동시에 이동권연대를 발족한다고 18일 밝혔다.   

   나도 이곳저곳 다니고 싶다


  청와대에 입성하자 DJ는 민주화투쟁의 상징이자 장애우들에 대한 상징인 지팡이를 버렸다. 그리고 이땅의 장애우들은 여전히 눈총과 불편을 감당하며 살아야했다.
  그는 단지 지팡이만을 버린 것이 아닌 것이다.

 2001/04/20 오전 08:47
기사제공 기관 : 인권운동사랑방 ⓒ 2001 OhmyNew

 

 

 

▶ 2001년 2월 6일 서울역 선로 점거 투쟁

선로점거 장애인 과잉진압 물의
    

 어제(6일) 오후 4시경, 서울역 지하철 1호선 청량리 방면 선로를 약 30여명의 장애인들이 점거하고 1월 22일에 일어난 오이도역 장애인수직형리프트추락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철도청장 사퇴, 국무총리 면담등을 요구하며 약 40분동안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 경찰이 무리한 연행과 해산을 강행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농성을 벌이던 장애인을 선로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끌어올려 선로에 드러누웠던 여성 장애인 최옥란(35. 지체장애 2급) 씨가 옷이 찢기고 어깨와 복부를 전경에 의해 얻어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 외에도 선로에 있던 많은 장애인들을 짐짝 던지듯 들어올려 3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후에도 전경들은 장애인들이 자진 해산을 하기 위해서 다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광장으로 나와 정리 집회를 하려 모여 있는 중에 뒤에서 덮쳐 사람들을 무작정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강제 연행과정에서 경찰은 미란다 법칙마저 공지하지 않았으며, 자진해서 경찰차에 오르겠다던 장애인들도 억지로 무리하게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박경석(지체 1급) 씨가 휠체어에서 굴러 떨어지고 그의 휠체어가 부서졌다.  
 연행된 이후에도 남대문 경찰서와 마포경찰서는 이들에게 가족 면회조차 해 주지 않고 있다가 오이도역 대책위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6일 자정쯤에야 면회를 하게 해 주었다.  
 연행된 사람들 중에는 지체장애인협회 경기도지부 소속 정신지체 장애인 상이진(정신지체2급) 씨와 조경림 씨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온 밤을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경찰은 일단 선로에 내려가지 않은 단순가담자와 선로 점거자로 분류해서 단순가담자는 훈방조치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선로점거자를 가려내기 위해 단순 가담자를 붙잡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로 오이도역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박경석 교장은 구속이 불가피해 역사상 최초로 지하철을 멈추게 한 장애인으로 기록될 뿐 아니라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구속되는 사례도 드물어 그의 구속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오이도역' 장애인수직리프트추락참사대책위원회 간사단체인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책위는 또한, 어제 저녁 mbc 뉴스보도가 농성의 앞뒤 설명 없이 편파적으로 보도했다며 항의 공문을 발송했다. 특히 mbc 취재진은 강제 연행 당시 현장에서 모두 상세히 취재한 것으로 알려져 장애인단체는 편파보도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 현재 총 연행되어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은 총 31명이며 경찰이나 검찰 모두 유례가 없는 이 일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로 농성을 했던 단체는 노들장애인야학,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소속 회원들이며 지체장애인협회는 선로 농성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2001/02/07 오후 2:59
기사제공 기관 :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 2001 OhmyNews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2가 237 명륜주상복합아남아파트 301동 111호
전화 : (02) 766-9101 / 전송 : (02) 766-9102 / 전자우편 :
webmaster@access.jinbo.net